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3분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그 이유로는 “종북세력 척결”과 “헌정질서 유지”를 들었습니다. 윤 대통령은 긴급 담화를 통해, 국회에서 지속적으로 정부 관료에 대한 탄핵 소추가 이루어져 행정부가 마비 상태에 이르렀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비상계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윤석열대통령 비상계엄선포 이유
윤 대통령은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보호하고, 반국가세력을 척결하여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또한 민주당이 내년도 예산에서 중요한 항목을 삭감하여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이러한 상황이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비상계엄이란?
비상계엄(非常戒嚴)은 국가의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 시에 대통령이 선포하는 특별한 계엄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제도는 사회 질서가 극도로 혼란된 지역에서 군사적 필요에 의해 또는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발동됩니다.
주요 특징
- 권한 이관: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해당 지역의 행정권과 사법권이 군의 지휘 하에 들어가며,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 계엄사령관의 역할: 계엄사령관은 계엄지역 내 모든 행정 및 사법 업무를 담당하며, 필요시 특별 조치를 통해 체포, 구금, 수색 등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군법회의가 일정 범죄에 대한 재판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 국회 통보 및 해제 요구: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대통령은 즉시 국회에 이를 통보해야 하며, 국회가 과반수 찬성으로 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은 이를 해제해야 합니다.
역사적 사례
한국에서는 여러 차례 비상계엄이 선포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1948년 여순사건, 1960년 4.19 혁명, 1972년 10월 유신, 1979년 부마항쟁 등이 있으며, 특히 1980년 5월 17일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전국적으로 확대된 비상계엄은 광주민주화운동을 촉발하기도 했습니다
- 1948년 여순사건: 여수와 순천 지역에서 발생한 반란 사건으로 인해 비상계엄이 선포되었습니다
- 제주 4·3 사건: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 봉기와 관련하여 비상계엄이 선포되었습니다
- 한국전쟁: 전쟁 중 여러 차례 비상계엄이 선포되었습니다
- 1960년 4·19 혁명: 이승만 정권에 대한 학생 시위로 인해 서울 지역에 비상계엄이 선포되었습니다
- 1961년 5·16 군사정변: 박정희가 주도한 군사 쿠데타로 전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되었습니다.
- 1964년 6·3 사태: 한일회담 반대 시위로 인해 서울에 비상계엄이 선포되었습니다.
- 1972년 10월 유신: 박정희 대통령이 헌법을 개정하고 정치 체제를 개혁하기 위해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 1979년 부마항쟁 및 10·26 사태: 박정희 대통령의 피살 이후 전국적으로 비상계엄이 확대되었으며, 이는 1980년 5·17 쿠데타와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비상계엄은 본래 국가의 안녕과 공공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제도지만, 역사적으로는 정치적 목적이나 독재 정권의 권력 유지 수단으로 악용된 사례도 많았습니다. 이는 국민의 헌법상 권리를 제한하고 군부에 권력을 집중시키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인권 측면에서 논란이 많습니다.